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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나만 왜 아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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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05 09:29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판단하지 말아야

흐르는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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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집안 사정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교실을 빠져나와 조용한 학교를 혼자 돌아다녔다. 정처없이 거닐다가 아무도 없는 작은 화단을 발견했다. 화단 구석에 앉아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이윽고 마음이 툭 하는 소리를 내며 스르르 풀어짐을 느꼈다.  


모든 게 다 싫고 밉다며 씩씩거리던 마음이 차분해졌고 이내 진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처음으로 철저히 혼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알고는 있었는데 모르는 척 해왔던 감정을 처음으로 직면했다. 갑자기 절대 도망칠 수 없을 것만 같은 큰 외로움이 번져와서 당황스러웠다. 외로워서 힘들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 감정이 이상하게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마주한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좋아했던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감정으로 세수를 하고 흘려보내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읽을 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 바로 실천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서 ‘나는 외롭다. 이게 외로움이구나. 외로움은 이런 감정이구나’하고 되뇌었다. 외로움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한참 바라보다보니 외로움이라는 게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이 그 자체로 무섭고 위협적인 감정이라기보다 내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려 했기 때문에 두렵다고 느낀 게 아닐까. 존재하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외계인 침공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냥 이 감정을 잘 몰라서 두려운 것이라고 단정지은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을 했다. 마음이 가장 벅차오르던 순간 중 하나였다. 

 

마음이 힘들 때 감정을 직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끄덕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좋은지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나의 경우 위에서 말한 경험이 감정을 직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강렬했던 첫 경험이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감정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감정 때문에 힘든 것 못지 않게 ‘내 감정을 판단하는 나’ 때문에 힘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외로워서 힘든데 여기에 더해 내가 외롭다는 사실이 짜증나고 다른 사람들은 잘 지내는 거 같은데 나만 외로운 거 같아서 억울하고 또 외롭다고 해서 이렇게 무너지는 내가 싫다는 둥 많은 사람들이 감정에 더해 그 감정을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괴로움을 늘려나간다. 


나의 분노 역시 외로움이 만들어낸 감정이라기보다 외로움에 대한 나의 잘못된 대처법이 만들어낸 불필요한 고통이었다. 누구보다 나의 감정에 지레 겁을 먹고 감정이 보내는 메시지도 들어보기 전에 외면하기로 결정한 나 때문에 두렵고 힘들었던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감정에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말고(react) 대응(respond)할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이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감정을 해석함으로써 해당 감정에 대한 최종 경험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정을 멋대로 판단하지 않고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혀 감정을 널리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어떤 사람의 한 가지 모습만 가지고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 행동이듯 감정을 대할 때도 이 감정의 한 가지 모습에만 치우쳐 전체를 판단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나라는 인간이 복잡한 존재인 만큼 내 감정의 세계 또한 복잡하기 때문이다. 


단지 짜증 또는 분노라고 해석하고 있었던 내 상태가 실은 그 기저에 거대한 외로움을 끼고 있었던 것처럼, 또 외로움을 대했을 때 쓸쓸한 한편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우리의 감정 경험이 전적으로 단 하나의 감정에 의해 지배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예컨대 특정 물체나 벌레에 대한 공포증을 보이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무섭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무섭다기보다 불쾌함이나 혐오감이 더 큰 것 같고 피하고 싶은 마음 못지 않게 호기심도 크게 느껴지고 사실 조금 흥분되기도 한다고 보고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감정의 세계는 언제나 풍부하다.

 

후회 또한 슬픔, 화, 미련, 아쉬움, 상실감, 대상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을 내포하는 등 감정 안에는 언제나 한 편의 영화 못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따라서 어떤 감정 상태를 단순히 조금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나쁜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인 것이다. 


서둘러 판단하고 단정짓기보다 영화관에 앉아 스크린을 통해 내 마음 상태를 바라보는 관객이 된 것처럼 한 발짝 떨어져서 ‘내 마음이 이렇구나. 이런 저런 감정이 느껴지고 이런저런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구나’ 하고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이러한 접근법이 감정을 이해하고 감정에 응답하되 휩쓸리지는 않는 단단한 마음을 길러줄 것이다. 

 

※관련기사

Hill, C. L., & Updegraff, J. A. (2012). Mindfulness and its relationship to emotional regulation. Emotion, 12, 81-90.

 

 

(출처 동아사이언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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