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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상’ 존재를 믿고 자살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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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상’ 존재를 믿고 자살하는 사람들

 

자기 변형적 자살

 

자기 변형적 자살은 존재를 변화시키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다. 이는 자기 존재를 변형하려는 방식에서 이해된다. 인간은 반드시 자살을 언급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존재의 변형을 추구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달라지고, 세월을 거듭하면서 점차 발전적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자신의 형태가 진정 달라지는 존재론적 변형은 인간이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욕구일지 모른다. 자살이 하나의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변형하는 한 방식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종교심리학에서는 일종의 신비주의로 존재의 초월을 의미한다. 다른 존재로의 변형은 외관상으로 성질이 다른 존재가 된다. 자기 변형의 자살은 다음 몇 가지 유형을 갖는다.

 

1) 변신적 자살

 

변신적 자살은 존재의 변형을 꿈꾸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다. 현실에서 자신의 존재가 불만족스러워 다른 존재를 강력히 희망하는 결과다. 이는 대개 올바른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주로 일어난다. 그들은 자살을 조상들의 세계로 가는 최종 결말로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은 신들이 그들의 죽음을 부른다고 믿는다.

 

 

이런 현상은 다른 민족이나 부족들에서도 나타나지만 특히 시베리아의 캄찰달과 아메리카의 인디언에게서 나타난다. 이들 중에서도 체이넨, 크릭, 검은발 부족들이 이런 믿음을 갖고 있다. 심지어 말리 도공족은 조상들을 만나기 위해 굶어 죽으려는 목적으로 식량도 없이 정글 속 깊숙이 들어간다. 그리하여 죽음이 그들을 찾아올 때까지 얼음이 떠 있는 호수에 빠져 익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존재의 변화를 꾀하는 행동이자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으로 보아야 한다. 이들은 현세에서 스스로 죽어 없어짐으로 새로운 존재의 변형을 시도하는 것이다.

 

 

스스로 죽어 신(神)이 된다고 믿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상은 보편이지는 않지만 특정 부족에서는 그렇게 믿는 편이다. 예를 들어 폴리네시아 카나크 부족의 언어에는 정확히 ‘죽다’는 동사로 옮길 수 있는 단어가 없기에 그들의 의식에서 죽음이란 근본적인 변형일 뿐이다. 이 부족은 살아있는 인간의 세속적 요구에서 벗어나 죽음으로 신의 영역에 들어간다. 이들에게 자살은 다른 모습, 즉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자기 신체 기능을 스스로 잃는 것이다. 그들은 신이 돼 다른 형태로 살아있는 사람들과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보다 나은 삶의 조건을 찾으려는 자살자가 산 자와 지속적인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고 믿는다. 이런 이유로 그들에게 자살은 새로운 세계이자 최상의 조건의 삶, 각기 다른 형식들을 취하는 삶으로의 탐구다. 이는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자살한 사람들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다.

 

변신적 자살은 현대에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1970년 11월 25일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자살 의식을 거행하면서 죽은 사람이 있다. 그는 활발한 정치 활동과 세계적인 저서로 널리 알려진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다. 그의 죽음을 두고 미친 짓이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스럽고 제의적이면서도 이타적인 행위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옹색한 인간의 삶을 벗어나 영원의 길을 선택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 자살하는 그를 보면서 같은 자리에서 2명이 뒤따라 죽었다. 그리고 1971년 6월 27일 가나자와 박물관에서 투슈카모토라는 어린 학생이 미시마를 모방해 자살했다. 그 학생은 죽기 전에 “나는 가장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30여명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할복 자살했다. 어린 학생이 그런 일을 감히 자행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변신적 자살은 현실적인 삶의 불만족과 연관성이 있다. 현실에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죽음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변신은 고통으로부터 회피 및 도피하려는 욕구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은 현실의 불만족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지만, 특히 전두엽이 완벽히 발달하지 않은 청소년들에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는 청소년들이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 힘겨운 상황이나 심각한 갈등 상황이 하나의 도피처로서 자살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이런 상황에 있는 경우 청소년은 대개 수동적이고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단절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그대로 자신의 자아상과 상반된 자신의 처지, 자신의 내적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변형의 시도일 수 있다.

 

2) 환생으로서의 자살

 

환생으로서의 자살은 다른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는 인간이 끊임없이 또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는 윤회설에 기초한다. 심지어 이들 중에는 자살한 사람들을 신으로 변형시키지 못하거나 영원으로 가게 돕지 못하면 영혼은 다른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존재의 환생에서 죽음은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이들에게 죽음이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인간이 사는 동안 선행을 많이 쌓으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되지만, 악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동물의 몸으로 환생하게 된다고 믿게 된다.

 

환생 사상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환생은 존재가 순환적으로 초월하는 것으로 불교의 해탈이 대표적이다. 불교의 윤회 사상은 이러한 순환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윤회를 통한 순환성은 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또 하나의 초월로 경험되는 신성한 틀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환생의 관점은 자아 초월을 자기 변형의 형태로 바꾼 니체의 영원회귀의 초인적 초월, 불합리에 가까운 까뮈(Camus)의 체념 등도 해당한다. 특히 까뮈는 생활의 영원한 불합리성을 각오함으로서 개인적인 허무주의를 초월할 수 있다고 설파한 점에서 니체의 영원회귀와 유사한 순환적 초월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에스키모인들은 죽은 후에 가장 좋은 목적지가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갑작스럽게 죽거나 자살하는 경우 영혼은 낙원의 공간, 즉 그들의 영혼이 세 가지 세계 중 한 곳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새 세계가 오기를 기다리며 살게 된다고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자살은 그들에게 괴로운 경험이 아니다. 이는 에스키모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 비율을 나타내는 데서도 입증된다. 이런 에스키모인들의 자살 관념은 상당히 보편적으로 확장돼 있기 때문이다. 에스키모 노인들은 자기들이 가정이나 사회에 짐이 된다고 느껴지면 쉽게 자살할 수 있고, 삶의 공간이 거의 없는 생활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자살할 수 있다.

 

 

유명한 북극지방 전문가인 페트릭 브라운은 한 에스키모 청년의 죽음을 전한다. ‘오아눅’이라는 이 젊은 에스키모 청년은 지역에서 최고의 사냥꾼으로 알려졌는데, 어느 날 사냥하다 실수로 절친한 친구인 오콕톡을 죽이고 말았다. 오콕톡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은 지 얼마 안 돼 둘째 아들의 시체를 보게 됐다. 어머니는 죽은 둘째 아들을 바라보면서도 울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모든 에스키모인들은 그녀가 어디로 갈지 잘 알면서도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누구도 그녀가 바위 꼭대기로 가지 못하도록 막는 사람이 없었고,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바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것을 보게 된다. 뒤이어 오아눅은 죽기 위해 끝도 보이지 않는 남극으로 떠났다. 고단한 삶을 굳이 영위해야 할 이유가 없을 때 그들은 쉽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도 있다. 겨울철 이동 기간 두 발에 동상이 걸려 걸을 수 없었던 어린 소년은 가족과 친지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 하자 자기는 그곳에 남아있겠다고 말했다. 이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그의 말을 받아들였고, 그에게 긴 구덩이를 하나 파 주었다. 그 소년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더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론 에스키모인들은 자기들의 공동체가 파괴되는 행위를 방관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소년의 결심 후에 보인 주변 사람들의 수동적인 태도는 단호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모두 특별히 예외가 아니라는 데서 우리는 더욱 놀라게 된다. 이런 점은 아마도 에스키모인들의 죽음의 개념이 신화적·종교적 철학과 북극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인식과 관계가 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3) 개인적인 탈출로서의 자살

 

개인적인 탈출로서의 자살도 자기 변형의 죽음을 선택한 행위다. 현재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기대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경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개인적인 탈출로서의 자살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삶보다는 죽음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 결과다.

 

 

개인적인 탈출의 개념은 아마도 기존 가치체계를 부정하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서 나타난다. 불어에서 ‘목마’를 의미하는 다다(dada)는 예술 양식이라기보다는 기존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허무주의’ 상태를 일컫는다. 특히 서구 근대의 세계관, 예술관의 근본인 합리주의의 인과관계를 부정하고 우연성을 중시하는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다다이즘을 흡수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통합하고 더 적극적으로 표현했던 초현실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은 초현실주의에서는 예술가와 삶의 융합으로부터 이뤄지기에 예술가를 부정하는 것은 그 예술가의 삶이 가치없고 무의미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현실과 극단의 대립은 결국 삶에는 죽음이 너무나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능하게 만든다. 끈질기게 노력해도 현실의 문제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자살이 하나의 해결이 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는 자살이 유혹의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허무주의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허무주의적 시각에서 스스로의 삶을 몇 살까지로 규정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초현실주의자 청년 리골이 마흔을 넘기지 않기로 자신에게 약속하고 실제로 자살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1929년 11월 5일 40세 생일이 되자 약속을 이행했다. 그리고 삶에 대해 고뇌한 끝에 늙는다는 것을 최고의 불행이라고 여겨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칼 마르크스의 딸과 사위 폴 라파르크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 부부는 70살이 넘어서는 살지 않겠다고 했던대로 1911년 11월 11일 자살했다. 마르크스의 사위는 부엌에서, 딸은 방에서 발견됐다. 이들은 “나는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다. 삶의 기쁨을 모두 빼앗고, 육체적 정신적인 힘을 잃게 하는 늙음이 나의 에너지를 마비시키기 전에 나는 자살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이때 자기가 키우던 개를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새로운 개 주인이 개를 사랑해 주고, 절대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썼던 것이 특이했다.

 

 

히틀러의 측근 요셉 괴벨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히틀러를 맹목적으로 경애했던 그는 더할 나위 없는 선전 부장인 동시에 대중 선동자였다. 그는 히틀러의 신화를 만들어낸 사람으로 히틀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 자신과 가족의 목숨까지도 히틀러를 위해 바쳤다. 4월 29일, 요셉 괴벨스는 지하호에서 <총통의 유서를 보충함>이라는 제목으로 유서를 썼는데 그것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우리 식구 모두는 결연하게 결심했다. 아내와는 충분히 상의했다. 아이들은 개인적 의견을 말하기에는 아직 어렸지만 스스로 결정내릴 수 있는 나이였다면 전폭적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총통의 곁을 떠나지 않고 옆에서 모실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의미 없는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개인적 탈출로서의 자살은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의 변형을 꿈꾸는 죽음은 아니다. 이들은 단순히 현실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일종의 좌절감이 그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만족하지 못해 새로운 세계를 기대한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자기 변형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실이 고달프고 힘들어 직면한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할 때 죽음을 해결책과 분출구로 찾았다는 점에서 존재의 탈출을 시도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시각은 현실의 문제에 부딪친 사람들이 죽음으로 존재의 탈출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이기도 하다.

 

 

4) 새로운 만남으로서의 자살

 

새로운 만남으로서의 자살은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행위를 말한다.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죽었거나 심각한 중병으로 죽었을 때 스스로 뒤따라 죽는 경우다. 사랑하는 사람과 저승에서나마 하나가 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새로운 만남으로서의 자살은 죽음 이후를 기약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나마 이루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영국의 해럴드 왕과 그의 애인 에디트의 최후가 유명하다. 영국에서 ‘최고 미인’으로 알려진 에디트는 해럴드 왕이 헤이스팅 전투(Battle of Hastings)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해를 찾아내고는 강으로 달려가 투신 자살했다.

 

오스트리아 왕자의 자살은 더 유명하다. 오스트리아 왕자인 루돌프는 옛 애인의 딸과 함께 자살해 이른바 ‘메이얼링의 비극’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루돌프는 선천적으로 음산한 분위기를 물려받아서인지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황후의 근심이었다. 그러던 차에 왕자는 실제로 죽음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고, 어느 창녀와 같이 죽자고 했고 2명의 장교 친구에게도 같이 죽자고 제안했다. 그러다 옛 애인의 딸인 마리 벳세라를 만났을 때 그것이 이뤄지게 됐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아들 루돌프에게 마리와의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나 루돌프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마치고는 자살을 결심했다.

 

당시 18세였던 마리는 왕자를 만난지 5일 만에 유언을 작성했고, 1888년 1월 28일 두 사람은 메이얼링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사냥 관저로 갔다. 거기서 마리는 사랑의 증표로 용기를 갖고 자신에게 총을 쏘라고 했다. 루돌프는 사랑하는 애인의 피 흘리는 머리를 베개에 올려놓고는 온 몸을 꽃으로 덮고, 옆에 누워 자기도 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너무 강해서 죽음으로밖에는 다시 꽃피울 수 없었을 것이다. 루돌프는 어머니와 누이 동생, 아내에게는 편지를 썼지만 아버지에게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 비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서의 자살을 택한 ‘죽음의 상징’으로 알려지고 있다.

 

죽은 자를 뒤따르는 행위는 비단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를 두고 동물이 무슨 자살을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런 예는 동물에게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수의학 박사인 꽁도레세는 동물들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인을 잘 따르는 동물이 주인이 죽고 나서도 절망적인 애착을 보이는 일이 많다. 스스로 굶어 죽는 동물들이나 주인의 무덤에서 며칠 동안 끈질기게 주인을 찾는 동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사회적 존재인 동물은 인간과 지속적이고 정감 어린 접촉을 한다. 동물들의 사회적 생활 방식은 인간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융합되고 확립된다.” 동물들의 자살은 전문적으로 연구돼야 할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만남을 위한 자살은 그 특성상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해될 수 있다. 자살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도저히 떨어질 수 없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진위 여부를 떠나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자살은 특히 이상향을 꿈꾸는 청소년기에 죽은 가족과의 재결합을 위해 시도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현실 생활이 어렵고 불행해 힘들다고 판단되면 자살로 출구를 찾으려 한다. 죽어서 저 세상에서 만나고, 후세에 다시 태어나고 싶은 환상적 욕구 등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청소년들의 자살이 대개 복수하고 남에게 벌주거나 남을 꼼짝 못하게 지배하려는 욕구, 희생과 속죄의 욕구, 고통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욕구, 죽어서 저 세상에서 만나고 후세에 다시 태어나고 싶은 환상적 욕구 등에 의한 것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보는 이유이다.

 

5) 결론: 자살 막으려면 현실의 불만을 잘 돌봐야

 

이상에서 우리는 자기 변형적 자살을 다루었다. 자기 변형적 자살이 변신적이든, 환생을 위한 것이든, 그리고 존재의 탈출을 꿈꾸고, 새로운 세계에로의 자살이든 모두 현실의 불만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심각한 현실의 불만이 저 세상의 이상향을 꿈꾸게 만들어 이 세상에서는 이룰 수 없는 존재의 발전이나 변화를 저 세상에서라도 이루고 싶다는 욕망이 작용한 결과다.

 

이런 자살은 특히 충동성이 강한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막연한 자살 관념으로 인해 더욱 시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력이 요구된다. 청소년 자살이 어느 유형이든 자신을 향한 파괴적 충동, 내적으로는 공격적인 살인, 남을 향한 적개심과 공격성이 자기 자신으로 향한 데서 유발되고 있고 대개는 현실적인 불만족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상담 치료에서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하는 청소년들을 여전히 접하고 있어 이런 현실이 더욱 깊이 느껴진다.

 

 

출처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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