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뇌는 보통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을 머릿속에 오래 저장한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의 뇌는 생존과 관련된 공포에 대한 기억을 장기간 저장하는 것으로 진화됐다고 한다. 특히, 물리면 죽는 `뱀의 독`, 화려하지만 먹으면 죽는 `독버섯` 등 우리의 생명과 밀접히 관련된 독에 대한 기억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정보이자 영구 저장돼야 하는 경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의약품이나 화학물질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없어도 생명에 치명적인 부작용이나 독성을 유발하는 물질에 대해서는 누구나 기억의 각인을 가지게 된다. 반세기도 더 지난 탈리도마이도(Thalidomide) 사건이나 얼마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누구에게나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한 사회적 이슈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의약품 독성이나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성 문제는 수많은 희생을 치루고 나서야 이슈화돼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이 된다는 것이다.
`탈리도마이도` 사건은 의약품 부작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만한 현대의학 역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다. 독일의 제약사 그뤼넨탈(Grunenthal GmbH)에서 `콘테르간(Contergan)`이라는 제품명으로 출시된 탈리도마이드는 뛰어난 진정·수면 효과를 보이며 처방전 없이도 구매할 수 있는 안전한 약물로 대대적으로 홍보됐다.
특히 입덧 완화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 수 많은 임산부들이 복용했으나 콘테르간을 복용한 산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들은 60% 정도만 생존했고, 생존한 아이들에게는 팔다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기형이 유발됐다. 전 세계 46개국에서 사용된 이 약으로 인해 1만 2000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났고 이들은 평생 장애를 안고 사는 비극을 맞이하게 됐다.
반면, 미국은 탈리도마이드에 의해 유발된 기형아 출산이 17건으로 다른 서방국들과는 달리 피해가 극히 미미했다. 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허가 평가를 담당했던 프란시스 켈시 박사의 숨은 공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탈리도마이드 제약사의 집요한 로비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탈리도마이드의 효능과 태아에서의 안전성 자료의 부족함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승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켈시 박사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수여 받았고, 탈리도마이도 사건과 켈시 박사의 공헌은 현재의 의약품 규제의 바탕이 된 한층 강화된 의약품 허가제도에 대한 수정안이 미의회에서 통과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는 지나간 일을 반면교사 삼아 더 이상의 비극이 발생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나쁜 기억은 의약품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생활 속 화학제품에 대한 케모포비아 확산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바이러스 감염 위험성 만큼이나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많다.
하지만 이로 인한 화학제품 오·남용에 대한 경각심이나 의약품 안전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지난 20년간 독성연구 분야 국내 유일의 출연연구기관으로 안전한 의약품, 치료제 및 화학물질 개발을 위한 안전성·독성 연구를 수행해왔다.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위한 과학기술의 노력을 되짚어 보며,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되돌리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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