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계씨’에는 배움을 얻는 단계에 따라 사람들을 네가지 부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다음이며, 곤경에 처해서 배우는 사람은 또 그다음이고, 곤경에 처해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최하이다(生而知之者上也 學而知之者次也 困而學之又其次也 困而不學民斯爲下矣·생이지지자상야 학이지지자차야 곤이학지우기차야 곤이불학민사위하의).”
여기서 ‘생이지지자’는 말 그대로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다.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배우지 않아도 아는 사람이다. 즉 누구에게 배워서가 아니라 스스로 깨우쳐 아는 사람으로 보통 사람의 차원을 넘어선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새로운 학문이나 사상을 창시한 사람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유교의 시조인 공자와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자들로부터 성인(聖人)으로 추앙받았지만, 공자 스스로는 “나는 ‘생이지지자’가 아니라 옛 성현들의 말씀이 좋아 열심히 배워서 알 뿐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아비생이지지자 호고민이구지자야).”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다음 ‘학이지지자’는 배움을 좋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증자는 스승인 공자로부터 ‘둔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제자였다. 공자의 현명한 열 제자를 칭하는 ‘공문십철(孔門十哲)’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끊임없이 학문과 수양에 정진한 결과 공자의 철학과 사상을 후대에 전하는 후계자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다음 ‘곤이학지자’는 곤경에 처하고서야 배움을 시작하는 사람이다. 공부를 할 기회와 여건이 주어졌을 때는 게을리하다가 정작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야 배움의 필요성을 깨닫고 공부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여기에 속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늦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를 통해 어려움을 이기고 재기의 기회를 얻는다. 고난에 닥쳤을 때 하는 공부는 그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곤이불학자’로 곤경에 닥쳐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가장 안타까운 사람이다. 이들은 주위 환경을 원망하고, 세상을 탓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핑계를 돌리지만 스스로 노력하지는 않는다. 오직 행운만을 바랄 뿐이다. 이들 대부분은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고난 속에 매몰된다.
출처 농민신문
댓글 보기 ( 0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