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은 인품까지 갖추면 빛나기 마련입니다. 위인은 죽어서도 후세의 귀감이 되며, 그 행적은 이야기로도 회자됩니다.
고불 맹사성(1360-1438)은 조선시대 청백리의 상징이었습니다. 맹사성은 좌의정 벼슬을 하였는데에도, 청백하여 식량을 조정에서 봉급으로 주는 쌀인 녹미에만 의존하여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밖으로 출입할 때에는 검은 소를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맹사성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에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21호입니다. 그의 묘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맹사성이 죽자 따라 죽은 소의 무덤인 흑기총도 있습니다. 맹사성이 살았던 충남 아산의 고택 맹씨행단은 사적 제10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맹사성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일화란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급제하여 군수로 부임하게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있었다고 합니다. 부임하면서 노승을 찾아가 ‘군수로서 지표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노승이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만 하면 됩니다’라고 답하자, 화가 난 맹사성이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고작 그것뿐이오?’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서려 하자, 스님이 차나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았습니다.
스님이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자 방바닥을 적셨습니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라고 맹사성이 소리쳤습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릅니까?’라고 스님이 응답하였다고 합니다.
부끄러워진 맹사성이 황급히 문을 열고 나가다가 그만 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그 말에 맹사성은 평생을 겸손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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