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익히 들어온 속담인데 두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어떤 일이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 한가지는 아무리 큰일이라도 그 시작은 미약하다는 뜻이다. 둘을 합쳐보면 ‘어떤 일이든 시작을 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설사 시작이 미약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계속하면 반드시 큰일을 이룰 수 있다’가 되겠다.
이에 관련된 두가지 고사가 있다. 먼저 <당서>에 실려 있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의 고사다.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이태백이 상의산에서 수업하던 중 포기하고 산을 내려왔다. 그때 한 노파가 냇가에서 도끼를 바위에 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큰 도끼를 열심히 갈고 있는 모습에 궁금해진 이태백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고 묻자, 노파는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고 있다”고 대답한다. 기가 막혔던 이태백이 “도대체 그 도끼가 언제 바늘이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파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무렴, 중간에 그만두지만 않으면 되고말고.” 확신에 찬 할머니의 말을 듣고 부끄러움을 느낀 이태백은 다시 산으로 돌아갔고, 이 배움을 교훈 삼아 열심히 공부한 결과 당대 최고의 시인이 될 수 있었다.
<열자>에 실린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도 있다. 옛날 중국의 북산(北山)에 우공(愚公)이라는 90세 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사는 마을은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이라는 거대한 산에 가로막혀 있었다. 우공이 어느 날 아내와 자녀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저 험한 산을 평평하게 해 예주(豫州)의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는 동시에 한수(漢水)의 남쪽까지 갈 수 있도록 하겠다.”
가족 대부분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이 반대하며 말했다. “당신 힘으로는 조그만 언덕 하나 파헤치기도 어려운데, 어찌 이 큰 산을 깎아내려는 겁니까? 또 파낸 흙은 어찌하시렵니까?” 아내의 말에 우공은 “흙은 발해(渤海)에다 버리겠다”고 말했고, 그때부터 세 아들은 물론 손자들까지 데리고 나와 산을 파고 흙을 나르기 시작했다.
우공의 모습을 보고 황해 근처에 사는 지수라는 사람이 “도대체 언제 그 산을 다 옮길 것인가”라며 비웃었지만, 우공은 굽히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내 비록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내가 죽으면 아들이 남을 테고, 아들은 손자를 낳고 또 손자는…. 이렇게 자자손손 이어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저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
우공의 무모한 도전을 지켜보던 두 산의 사신(蛇神)들은 처음에는 우공을 미련하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우공의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자신들의 거처가 사라질 것을 염려해 천제(天帝)에게 산을 옮겨줄 것을 요청한다. 천제는 우공의 우직함에 감동해 두 산 중에 하나는 삭동(朔東), 또 하나는 옹남(雍南)에 옮겨놨다. 불가능할 것 같던 우공의 염원이 이뤄진 것이다.
이 고사들을 보며 터무니없는 허풍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세태에서 보면 이 고사들에는 반드시 새겨봐야 할 의미가 들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돋보이지 않고 그럴듯해 보이지 않으면 일을 시작하지 않으려고 한다. 겉보기에 그럴듯하지 않은 일엔 특히 그렇다. ‘내가 누군데 그런 일을…’ 하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크고 높은 이상에 도전하는 일은 ‘나는 그럴 만한 존재가 못돼’ 하며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인다. 적당히 교만하며 적당히 겸손한, 현실에 안주하는 데 만족하는 것이다.
<도덕경>에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도 그 시작은 쉬운 일이고, 세상에서 가장 큰 일도 그 시작은 미세하다(天下難事必作於易 天下大事必作於細·천하난사필작어이 천하대사필작어세)”라는 말이 있다.
그 어떤 큰일도 작은 시작이 없으면 이룰 수 없다. 아무리 크고 위대한 일이라고 해도 시작이 있어야 하고, 일단 시작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일도 처음부터 큰일은 없다. 비록 하찮게 시작하더라도 그 나중은 얼마든지 창대할 수 있다. 모든 위대함의 시작에는 작은 첫걸음이 있다.
출처 농민신문 조윤제 (인문고전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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