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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5 11:25

‘안녕하세요?’라는 상징적 의례

흐르는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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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사를 나눌 때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안녕을 묻는다. 안녕(安寧)의 安(안)과 寧(녕)은 모두 ‘평안함’을 뜻하기에, 누군가에게 건네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은 상대방이 평안한지 여부를 묻는, 다시 말해 안부(安否)를 묻는 제스처이다. 그러나 인사말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안녕하세요?”와 같은 발화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인사는 하나의 형식적 관습이며 패턴화된 상례(常禮)라고 할 수 있다.

렇다면 이런 형식적인 인사를 왜 주고받는 것일까? 라캉(Jacques Lacan)이 언급한 ‘텅 빈 제스처’라는 개념을 경유하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텅 빈 제스처는 알맹이가 없는 상징적 제안과 거절의 양식이다. 예를 들어, 입사 동기인 A와 B라는 사람이 있는데, A만 승진을 하고 B는 승진을 하지 못한 상황이 있다고 하자. 만약 A가 B에게 “이번에 네가 승진을 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승진을 양보하려고 한다면, B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B는 A를 질투하거나 자신만 승진하지 못한 상황에 분개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맞아, 네가 아니라 내가 승진하는 게 맞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B는 보통 “무슨 소리야, 네가 승진하는 게 맞지.”라고 답할 것이다.

A와 B 사이의 대화에서는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A가 진심으로 승진을 양보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도 아니며, B 또한 진심을 담아 거절한 것도 아니다. 그 누구도 진실하지 않지만 이 대화의 맥락 안에서 A가 보여준 승진 양보의 제스처에 대해 B는 정중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의미 없는 텅 빈 제스처를 통해 A와 B의 우정은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B가 “맞아, 네가 아니라 내가 승진하는 게 맞다.”라고 답하는 순간 A와 B의 관계는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마치 미리 정해진 각본처럼 A와 B는 의례적인 말을 주고받을 뿐이지만, 승진을 둘러싼 갈등 상황에서 텅 빈 제스처는 관계를 회복하는 상징적인 힘을 부여한다.

인사도 텅 빈 제스처와 같은 상징적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인사의 제스처는 사회적 상호 작용을 위한 관습인 것이다. 사실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실용적인 담화 방식과 상징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의례적인 담화 방식은 확실하게 구분된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사실적인 정보를 묻는 발화로 생각하고, “네, 저는 안녕합니다.” 또는 “아니요, 저는 안녕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안녕하세요?”라는 물음에 사람들은 “안녕하세요?”라는 또 다른 물음으로 답하는 것이다. 알맹이가 없어 보이는 “안녕하세요?”의 교환 속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성의 실존을 표현한다. 인사를 주고받는 쌍방이 서로 동등하든 아니면 어느 한 편이 우월하고 다른 한 편이 열등하든 간에, 인사를 매개로 너와 나가 하나의 관계 속에 위치하고 있음을 확인받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주변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어색해질 때가 있다. 인사를 하면 “네.”라고 대답만 하거나, 쭈뼛거리면서 가볍게 목례만 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인사가 하나의 상징적 의례이며 서로 사회적 관계를 맺고 확인하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인사를 무심하게 받는 태도는 인사를 건넨 사람과의 관계를 거절하는 제스처로 비쳐질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인사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받지 못했을 경우, 이유모를 불쾌감을 느낀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불쾌감의 근원에는 상대방에게 기대했던 상호 작용에 대한 거절이 놓여있다. 너와 나 사이에 상호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라는 공동체는 성립할 수 없으며,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받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일상적인 제스처라 깜빡 잊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안녕하세요?”라는 상징적 의례가 가지는 무게감은 만만치 않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상대방과 제대로 된 인사를 주고받아보는 것은 어떠할까? “안녕하세요?”라고.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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