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 선 화
김상옥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듯 힘줄만이 서누나.
여름이면 손톱 끝에 봉숭아물을 들였다. 백반가루를 제대로 넣지 못하여서인지 손톱 주위 여린 살만 분홍물이 들까말까 하였지만 곧잘 봉숭아 몇 잎을 손톱 끝에 문지르곤 하였다. 장독대, 우물가, 꽃밭에 어김없이 피던 꽃 봉숭아.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왠지 추억 속에 어리는 정겨운 꽃, 가슴 한 귀퉁이 낯익은 모습으로 서성거리는 어머니, 누이 같은 꽃이다.
'봉선화'는 초정 김상옥이 만 18세에 1938년 '문장'을 통해 추천받은 작품이다. '백자부' '옥적' '다보탑' 등 주옥같은 초정의 작품 중 그 무엇보다 애정어린 '봉선화'의 소박한 서정이 마음을 깨뜨린다. 초등 6학년 교과서에서 만난 '봉선화'를 읽으면서 나는 시조시인이 되는 꿈을 키웠을까. 읊을 때마다 눈앞이 삼삼해오는 것은 너무 감성에 젖은 탓일까.
전연희·시조시인·신라중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