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듣는 저녁
김석이
차창에 부딪쳐서 주르륵 무너지는
묵언의 흐느낌이 더 크게 다가와서
눈으로 듣는 절규를 마음속에 가둔다
이미 다 젖어버려 흥건한 바깥인데
축축한 그 목소리 안으로 파고들어
아둔한 오감 깨우며 얼룩을 씻어낸다
입춘과 우수를 훌쩍 넘기고 경칩을 향하는 요즘 가뭄 소식이 심상치 않다. 자연은 언제나 성스러움과 두려움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옛날 가뭄이 들면 왕들이 몸소 기우제를 지냈다. 왕들도 얼마나 괴로웠을까 짐작이 간다. 그들 역시 남들 말하는 슈퍼맨과 영웅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사회의 제도이든 암묵적 관습이든 적어도 세상살이에 대한 염치는 있었다.
봄 가뭄에 단비는 말라버린 땅을 적시는 정화의식이자 생명이다. 먹고사는 일상의 가뭄은 절규하는 돈가뭄으로 아우성이다. 달리는 ‘차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은 더 이상 팔자 좋은 사람들만이 누리던 천상의 소리가 아닌 고된 세상살이의 ‘절규’로 재현된다. 뒤틀린 정형과 비정형의 질서를 ‘젖은’ 묵언을 통해 자신을 위로한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니지만 평범했던 세상살이의 ‘얼룩을 씻어내’는 ‘비의 정화를 조용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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