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容恕)는 한자어이며 국어사전에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 해석을 보면 행위에 대한 설명이고 행위를 하는 주체자의 생각이나 마음에 대한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한자 ‘容恕’를 풀어서 보면 ‘容’은 외적으로는 얼굴이나 용모를 의미하고 내적으로는 속내 혹은 속에 든 것을 의미한다. ‘恕’는 如(한결같음)와 心(마음)으로 구성되어있다. 한결같은 마음이 ‘용서할 서(恕)’이다. 즉 상대를 보아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 단계를 의미한다. 특히 如(한결같음)는 공(空)과 같이 일체 동요도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여여(如如)가 부처의 마음 상태이고 경지를 의미한다.
진정한 용서란 국어사전적인 행동에 대한 정의가 아니고, 한자 뜻이 의미하는 내면적인 마음에서 상대를 보고도 흔들리지 않는 무심한 경지에 들었을 때가 진정한 용서다. 즉 꾸짖거나 벌하지 않는다고 용서가 된 것이 아니다. 영어로 forgiveness 역시 for(멀리)와 give(주다)로 ‘마음 밖에 내 보내다’ 즉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의미로 한자 의미와 유사하다. 상대를 보고 마음에서 분노든 미움이든 억울함이든 어떤 동요도 일어나지 않아 비로소 용서가 된 것이다.
요즘 연예계와 스포츠계에서 학폭이 연일 폭로되고 있다. 학폭을 당한 피해자는 결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사건들을 때가 되어 밝히게 되는 것이다. 당시에는 힘이 없었거나 어떤 상황이 마음이 배제된 국어사전적 용서를 강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내면으로 들어간 사건은 평생을 두고 유사한 사건이나 상황을 만나면 생각나고 그때마다 분노하거나 저주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가해자는 기억못하는 하찮은 일일 수도 있으나 피해자는 마음에 큰 상처로 남는다. 마치 아이들이 장난삼아 돌을 던지지만, 개구리 입장에서는 죽고 사는 문제인 것과 같다.
살다 보면 용서 못 할 사람을 만난다. 필자도 몇 명을 만났었다. 그들을 만나거나 생각할 때마다 분노가 올라왔었다. 어떤 때에는 야비하고 비열하고 나쁜 놈이니 착한 사람들을 위해 사회에서 제거해달라고 매일 기도를 드린 때도 있었지만, 신은 그런 일에 별로 관여하지 않거나 대부분 답변하지 않았다. 반대로 더 잘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악하게 살고있는 그들 삶이 썩은 고기를 찾는 벌레들처럼 불쌍해 보였다. 그 후로 그들을 생각해도 분노가 올라오지 않고 평정심이 유지되었다. 그들이 행하였던 악행들이 더이상 필자 마음을 흔들지 않았다. 그들을 용서한 적이 없지만, 그들은 더 이상 마음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이 죽었을지 여전히 악하게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관심 밖이니 더는 알지 못한다. 만약 필자가 용서하려 노력했다면 용서하려는 마음과 분노하는 마음이 충돌하여 아직도 마음에서 지우지 못했을 것이다. 용서는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얼마나 포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삶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나쁜 놈이 불쌍한 사람으로 바뀐다. 성경에서 용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 하라고 가르친다. 금강경에서는 팔다리를 다 잘려도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용서는 행동이 아니라 내면의 마음의 상태이다. 결코 강요나 설득에 의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혹자는 20~30년 지난 일들을 왜 이제야 밝히느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피해자 내면에 들어간 피해 기억은 시간이 멈추어져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동일한 상황을 만나면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마음 문제에는 시간 경과가 영향을 주지 못한다. 가해자가 용서를 빌어도 피해자가 용서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용서하지 못하고 피해 사건을 계속해서 마음속에 안고 사는 것 역시 지속적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해자의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행동은 피해자에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의미 있다.
미국 정신과의사 토마스 사즈는 ‘어리석은 자는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는다. 순진한 자는 용서하고 잊는다. 현명한 자는 용서하나 잊지는 않는다’라고 하였지만, 평온한 자는 마음에 가해자가 없어 용서할 것조차 없다.
출처 치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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