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들어가는 말의 힘
나는 나이 예순이 넘어서야 알았다. 내가 나다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말이 나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 사람의 가치나 인품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스펙이나 재산, 혹은 용모보다 그가 평소 하는 말과 행동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언젠가부터 독설이나 비난을 일삼는 사람, 입만 열면 험담과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불편해졌다. 오래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다보니 자체적으로도 통계자료가 만들어졌다. 독설로 흥한 사람, 투덜거려서 성공한 이들이 별로 없다는 것도 알았다.
달콤한 사탕발림, 영혼 없는 찬사, 의례적인 인사와 진심 어린 말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감별력’도 생겼다. 내가 타인에게 상처를 받는 이유도, 남들이 내게 실망하는 까닭도 결국은 각각 서로에게 독화살처럼 쏟아낸 말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지적과 충고라고 포장해서, 혹은 전문가의 인용이라거나 매스컴에서 검증된 사안이라는 수식어를 들먹이며 얼마나 많은 쓰레기 같은 말들을 쏟아냈던가. 때때로 누군가 ‘촌철살인’이라고 칭찬하면 더욱 우쭐해져 더더욱 강도 높은 가시 돋친 말들을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려다 쓰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표정이 내가 쓰는 말에 맞춰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남의 흉을 볼수록, 지적질을 할수록 입매는 심술궂게 내려가고 눈매는 흉해졌다. 내가 내뱉은 말의 독화살을 수거하는 데만도 말년을 다 바쳐야 할 지경이다.
이 문제는 상담을 받거나 병원에 가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책임질 일이라고 판단해서 최근 ‘나의 말, 남의 말’에 대해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만의 말의 원칙을 만들기 시작했다.
험담과 비난을 줄이는 방법은 기준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매사에 지극히 둔감한 내게는 평범한 사람도 예민해 보인다. 반면 섬세한 이들에게는 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무딘 존재일 수 있다. 각자의 취향과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절대로 “이렇게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을 왜 안 먹는 거야?” “이게 더 낫지 않니? 네 안목이 너무 저렴한 거 아냐?” 등의 무례한 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 대신 아름다운 말을 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려면 사람이나 사물의 아름다운 점, 장점과 매력을 찾는 공부를 해야 한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그 가운데서 내가 배울 점, 좋은 점만 먼저 찾아 감탄사를 터뜨리는 것이다. 또 남들에게 들어서 기뻤거나 위로를 받았던 말들, 책이나 자료에서 유명인사들이 한 말 가운데 영혼의 울림을 느낀 말들을 수첩이나 휴대전화 메모장에 기록해두는 습관도 들였다. 그리고 그걸 수시로 활용한다.
말이 바뀌었더니 정말 내가 바뀌는 게 아닌가. 아름다운 말 덕분에 나이 들수록 주름살과 뱃살은 늘어나지만 심술은 줄어들고 표정은 밝아졌다. 거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객관적인 증언이기도 하다. 가능한 한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하고, 좋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부작용 없는 최고의 성형수술이다. 연말을 앞두고 내가 스스로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기도 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도 않는다. 나 역시 지금도 욕이나 험담이 어금니까지 차오를 때가 있다. 그 순간 5초 정도 말이 새어나오지 않게 입술을 살짝 깨무는 훈련도 하는 중이다. 그 5초가 나를 성장시킨다고 믿는다.
유인경 (방송인)
출처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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