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벅 의 비극
남아프리카에 사는 양들 중에서 스프링 벅(springbuck)이라는 산양이 있다. 점프력이 뛰어나 스프링 벅 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산양들은 평상시 소규모일 때는 다른 양들처럼 떼를 지어 다니며 풀을 뜯어먹는다.
그러나 수가 늘어나 무리가 커지게 되면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큰 무리의 앞쪽에 있는 양들이 풀을 뜯어 먹어버리면 맨 뒤쪽에 있은 양들은 먹을 풀을 거의 없게 되므로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 풀을 차지하려고 경쟁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이들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지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맨 앞에 있던 양들도 뒤질세라 뛰기 시작한다.
뒤쪽의 양들이 빠른 속도로 앞으로 달려오므로 앞쪽은 선두를 뺏기지 않으려고 더 속도를 내어 뛰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수 천 마리에 이르는 스프링 벅 들은 풀을 뜯을 새도 없이, 쉴 틈도 없이,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간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큰 강가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달려온 스프링 벅 들의 무리는 갑자기 정지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하여 많은 양들이 뒤쪽에서 밀려드는 무리에 떠밀려 강물 속으로 빠져 죽는다.
이것이 분명한 목적도 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다 끝내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되는 스프링 벅 의 비극이다.
스프링 벅 의 이야기는 남들이 하는 대로 무작정 따라 하려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경종을 울려준다.
더욱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는 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해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그들 다수의 무리가 달려가는 곳이 성공과 안정을 보장해 주는 기름진 땅이라면 더 이상의 축복이 없을 것이다.
군중 속에 산다는 것이 때로는 위로와 위한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이 자신이 가고자 하는 행복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삶에서 만나는 길은 여행에서 만나는 길과는 달라서 물릴 수가 없다.
어쩌면 처음부터 정답이 없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다. 오히려 삶의 고비마다 늘 정답이 정해져 있다면 우린 로봇에 불과할 것이다.
미래는 불확실성 속에 다양한 가능성을 잉태하기에 더 역동적이고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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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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