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내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상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불안에 시달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지구 전체를 휘젓고 다니는 바이러스에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방역 전문가들의 조언, 행정당국과 언론이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경고와 주의, 시시각각 휴대전화를 통해서 전달되는 코로나 관련 안전정보에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완전히 포위되고 점령되었다.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빼앗기고, 경제활동이 거의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어디에 가든 마스크를 써야 하고, 보고 싶은 사람 방문도 삼가야 하고,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멀찍이 서서 손도 잡아보지 못하고, 인정과 선의가 꽃피는 얼굴을 보고도 서로 환하게 웃어줄 수 없으니 세상이 삭막함과 고립감과 우울감에 짓눌려, 최악의 미세먼지가 가득한 뿌연 하늘보다 더 짙은 암흑 속에 갇힌 것 같았다. 우리를 이렇게 가라앉게 하고 침울하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이든 집단이든 사람을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가장 크게 압도하고 위협하는 것은 죽음의 공포다. 철학자들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내던져진 존재’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매 순간 죽음과 대면하며 살아간다. 죽음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고 회피하여도 죽음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니 죽음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외면하거나 죽음에서 되도록 멀리 도피하려 하지 말고 죽음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직시할 때 오히려 우리는 불안과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해마다 우리나라에서 각종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8만여 명 정도이고 2019년 교통사고로 죽은 이들이 3349명이다. 2019년의 사망자 총수는 29만5100명이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도 대부분의 죽음은 일상화되어 언론도 보도하지 않고, 정부도 대책본부 차려 대응책을 마련하지도 않는다.
죽음이란 언젠가 모두가 필연적으로 가야 하는 길임을 아무도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감염증과 관련된 정보와 소식은 좀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날마다 수시로 전달된다. 시시각각으로 어느 지역에 몇 명이 확진되었고, 몇 명이 사망했는지 휴대전화 문자 착신음이 들린다. 지난해의 코로나 전체 확진자가 6만여 명이고, 세상을 떠난 이는 900명 정도다. 그런데 2019년 독감을 앓고 진료를 받은 사람이 54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가 720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코로나에 대한 현재의 두려움, 불안, 고립, 우울 증세는 왜 이렇게 유별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한겨레(강우일 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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