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당신은 머리가 좋아서 잔머리를 잘 굴린다고 말씀하신다. 잔머리를 굴린다고 하면 정공법을 쓰지 않고 꼼수를 부린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사소한 이익을 위해 꾀를 부리거나, 일을 하지 않고 거저로 수익을 얻으려고 하거나, 남들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바쁜 척 전화기만 붙잡고 있거나, 하는 행위들이다.
그러나 할머니가 굴리는 잔머리를 보면 잔꾀가 아니라 슬기롭고 지혜로운 일들이다. 이를테면 콩을 수확할 때 도로에 콩을 널어놓고 천막을 띄운 다음 지나다니는 차들이 밟고 지나가게 한다. 그러면 운전자는 재미있다고 몇 번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다. 콩알이 으스러질 것 같지만 실제로 내가 해보니 콩들은 멀쩡하다. 힘들게 도리깨질을 할 것 없이 그냥 콩대를 툭툭 털어서 콩만 가려내면 끝이다.
김장을 절일 때도 배추를 다 가르지 않고 꽁무니만 칼집을 내서 절이면 소금도 절약되고 버려지는 이파리도 거의 없다. 호박농사를 지을 때도 수꽃을 따서 암꽃에 비벼주면 수정이 잘 돼 호박이 주렁주렁 열린다. 그밖에도 작물에 따라 거름을 쓰는 법이며, 순을 치고 제초를 하며 언제 어떻게 방법을 쓰느냐에 따라 소출이 달라진다. 할머니는 그 방면에 도가 텄다.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이만이 쓸 수 있는 방편이다.
반면 잔머리 전문가들도 있다. 이들은 대개 통이 크다. 잘못을 저질러놓고 그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우거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선량한 이를 죄인으로 몰아세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어떻게 이용할까 하는 잔머리를 굴려 그의 능력이나 재산을 빼앗아가고 단물이 다 빠졌다 싶으면 뱉어버린다. 그리고 자기는 정당하며 이 시대를 사는 유능한 인물이라고 선전한다. 그에게 사람은 적이 아니면 도구일 뿐이다. 이용할 수 있으면 도구고 이용당하지 않으면 적이다.
나도 잔머리를 잘 굴리는 편이다. 솔직히 이 글을 쓰기 위해 여간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지 모른다. 시를 쓸 때도 대상에 대한 표현이 정확한지 또는 상상력이 어디까지 확장되었는지 몽상에 잠기고, 누군가의 표현을 가져다 쓴 것은 아닌지 잔머리를 굴린다. 말을 할 때도 근거없이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비난하지는 않는지 점검하며 엄청나게 잔머리를 굴린다.
할머니는 어쨌든 잔머리를 잘 굴린다. 콩이면 콩, 배추면 배추, 오이며 가지, 호박 할 것 없이 그 작물의 특성에 따라 심고 기르고 수확할 줄 안다. 자식 농사도 잘 지었다. 아이들이 어떤 소양과 취미와 특기를 갖고 있는가를 잘 알아 훌륭하게 기르고 공부시켰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부처님의 지혜나 할머니의 지혜나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 물론 방편을 쓰는 대상과 목적에 차이가 있지만, 할머니의 잔머리도 부처의 성품을 오롯이 지니고 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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