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머리를 굴리다 > 새창을 열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새창을 열며

새창을 열며

가슴에 번지는 이야기 나눌까요?

|
22-06-02 10:48

잔머리를 굴리다

흐르는강물
조회 수 2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전 체 목 록


이웃집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당신은 머리가 좋아서 잔머리를 잘 굴린다고 말씀하신다. 잔머리를 굴린다고 하면 정공법을 쓰지 않고 꼼수를 부린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사소한 이익을 위해 꾀를 부리거나, 일을 하지 않고 거저로 수익을 얻으려고 하거나, 남들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바쁜 척 전화기만 붙잡고 있거나, 하는 행위들이다.

그러나 할머니가 굴리는 잔머리를 보면 잔꾀가 아니라 슬기롭고 지혜로운 일들이다. 이를테면 콩을 수확할 때 도로에 콩을 널어놓고 천막을 띄운 다음 지나다니는 차들이 밟고 지나가게 한다. 그러면 운전자는 재미있다고 몇 번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다. 콩알이 으스러질 것 같지만 실제로 내가 해보니 콩들은 멀쩡하다. 힘들게 도리깨질을 할 것 없이 그냥 콩대를 툭툭 털어서 콩만 가려내면 끝이다.

김장을 절일 때도 배추를 다 가르지 않고 꽁무니만 칼집을 내서 절이면 소금도 절약되고 버려지는 이파리도 거의 없다. 호박농사를 지을 때도 수꽃을 따서 암꽃에 비벼주면 수정이 잘 돼 호박이 주렁주렁 열린다. 그밖에도 작물에 따라 거름을 쓰는 법이며, 순을 치고 제초를 하며 언제 어떻게 방법을 쓰느냐에 따라 소출이 달라진다. 할머니는 그 방면에 도가 텄다.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이만이 쓸 수 있는 방편이다.

반면 잔머리 전문가들도 있다. 이들은 대개 통이 크다. 잘못을 저질러놓고 그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우거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선량한 이를 죄인으로 몰아세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어떻게 이용할까 하는 잔머리를 굴려 그의 능력이나 재산을 빼앗아가고 단물이 다 빠졌다 싶으면 뱉어버린다. 그리고 자기는 정당하며 이 시대를 사는 유능한 인물이라고 선전한다. 그에게 사람은 적이 아니면 도구일 뿐이다. 이용할 수 있으면 도구고 이용당하지 않으면 적이다.

나도 잔머리를 잘 굴리는 편이다. 솔직히 이 글을 쓰기 위해 여간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지 모른다. 시를 쓸 때도 대상에 대한 표현이 정확한지 또는 상상력이 어디까지 확장되었는지 몽상에 잠기고, 누군가의 표현을 가져다 쓴 것은 아닌지 잔머리를 굴린다. 말을 할 때도 근거없이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비난하지는 않는지 점검하며 엄청나게 잔머리를 굴린다.

할머니는 어쨌든 잔머리를 잘 굴린다. 콩이면 콩, 배추면 배추, 오이며 가지, 호박 할 것 없이 그 작물의 특성에 따라 심고 기르고 수확할 줄 안다. 자식 농사도 잘 지었다. 아이들이 어떤 소양과 취미와 특기를 갖고 있는가를 잘 알아 훌륭하게 기르고 공부시켰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부처님의 지혜나 할머니의 지혜나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 물론 방편을 쓰는 대상과 목적에 차이가 있지만, 할머니의 잔머리도 부처의 성품을 오롯이 지니고 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TAG •
  • ,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댓글 보기 ( 0개 )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새창을 열며

가슴에 번지는 이야기 나눌까요?

목록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25 칼리 지브란의 결혼에 대하여 결혼에 대하여 - 칼리 지브란(Kah... 작은씨앗 06-19 162
124 산다 산다 다니카와 슌타로 ​... 작은씨앗 02-14 99
123 방하착 <방하착(放下着)과 착득거... 작은씨앗 11-27 131
122 내 엄마의 손과발 내용없음 작은씨앗 10-31 90
121 결혼 ... 작은씨앗 09-21 79
120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나는 어린 여러분들과 몇 토막 이야기... 흐르는강물 08-05 150
» 잔머리를 굴리다 이웃집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문... 흐르는강물 06-02 217
118 사투리를 살려 쓰자 사람들의 억양만 들어도 아하 남해사람... 흐르는강물 05-24 254
117 자연과 인간 인간 네가 각종 오염물질로 지구 내 ... 흐르는강물 05-16 246
116 그가 던진 질문 3 지금 지구촌에서 살고 있는 80억 명... 흐르는강물 05-04 249
115 정겹고 한 많은 보릿고개 손에 손잡고 벽을 넘는 자유로운 일상... 흐르는강물 04-23 234
114 히틀러와 채플린 역사는 반복되는 것입니다. 한번은 비... 흐르는강물 04-16 249
113 때로는 침묵이 웅변보다 더 힘 있게 느껴질 때가 있다 때로는 침묵이 웅변보다 더 힘 있게 ... 흐르는강물 04-05 294
112 소통과 단절과 커지는 외로움 상상을 초월하는 스피드와 용량을 자랑... 흐르는강물 03-29 256
111 얀테의 법칙, 보통사람의 법칙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고민을 ... 흐르는강물 03-17 284
110 척이라도 합시다 척이라도 합시다“고결한 척, 착한 척... 흐르는강물 03-07 271
109 기억 기억웃으려 하여도 아니 웃다가도 웃으... 흐르는강물 02-18 272
108 타자를 받아들이는 방식, 경청(傾聽) 타자를 받아들이는 방식, 경청(傾聽)... 흐르는강물 02-07 275
107 혀를 이기는 자가 승자다 혀를 이기는 자가 승자다세상의 변화만... 흐르는강물 01-19 265
106 나를 만들어가는 말의 힘 나를 만들어가는 말의 힘나는 나이 예... 흐르는강물 01-10 299
105 승리의 비법 승리의 비법- 먼저 너 자신을 알라&... 흐르는강물 12-30 319
104 보통날 매일 아무렇지 않은 듯 눈을 뜨고때에... 흐르는강물 12-24 336
103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겨울나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겨울나무처럼겨우살... 흐르는강물 12-15 353
102 낙엽 차가워진 날입니다. 몸과 마음을 움츠... 흐르는강물 11-24 311
101 사람만 남았다 ‘사람만 남았다’​“회장님은 ‘효(孝... 흐르는강물 11-13 325
100 용서란? 용서(容恕)는 한자어이며 국어사전에는... 흐르는강물 11-08 346
99 한 말씀이 꽃이 되다 세상은 말잔치이다. 철이 되면 말의 ... 흐르는강물 10-26 343
98 진실 기쁨보다는 슬픔이 즐거움보다는 아픔이... 흐르는강물 10-16 342
97 분노와 화는 다르다 분노와 화는 다르다. 분노가 사회적인... 흐르는강물 10-06 344
96 혼자 웃고 말자 조선시대 지방 수령 중에 과천 현감은... 흐르는강물 09-28 405
95 갈등을 해결하는 법 갈등을 해결하는 법갈등을 해결함에 있... 흐르는강물 09-18 356
94 차림새 - ‘나를 지키는 것’ 어쩌다 무심코 거울 속에 비치는 한 ... 흐르는강물 09-13 364
93 지금 이 시간, 지금 이 사람이 소중한 이유 지금 이 시간, 지금 이 사람이 소중... 흐르는강물 09-06 347
92 조바심이 실수를 부른다 흔히 알려져 있는 조바심의 어원은 조... 흐르는강물 08-23 374
91 두려움을 이기는 길 한 해 내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온... 흐르는강물 08-18 370
90 당연한 것에 대한 고마움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의 일상 전 영역... 흐르는강물 08-06 362
89 믿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쌓인다 공자는 믿음을 정치의 근본이자 나라 ... 흐르는강물 07-28 345
88 나무에 가지가 많은 이유 내가 사는 지역엔 노거수(老巨樹)라 ... 흐르는강물 07-17 357
87 [책] 직관과 이성의 충동과 융합을 분석한 <생각에 대한 생각> 생각을 지배하는 생각? 행동경제학에 ... 흐르는강물 07-10 367
86 환경을 활용하고 창조하는 법을 터득하라 환경을 활용하고 창조하는 법을 터득하... 흐르는강물 07-02 342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상단으로

작은씨앗 작은씨앗 054-***-5252 wo215@nate.com
포항시 북구 환호공원길39 영원빌딩 201호 /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길174번길 10(덕장리 803)
대표 : 이성우 고유번호 : 506-82-11544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이성우

Copyright © smallseed.or.kr All rights reserved.